풍경, 시대의 감성과 기억을 담다
      - 이장우 작가의 회화를 중심으로 본 현대 풍경회화의 의미와 확장 가능성

      임대식_아터테인 대표

      본문

      풍경은 언제나 우리의 일상과 함께 존재한다. 그것은 자연의 한 장면이기도 하고, 도시의 스카이라인이기도 하며, 때로는 기억 속 어렴풋이 남은 유년 시절의 골목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대와 감성, 그리고 기억을 담아내는 매체이자 장치로서의 그 역할을 한다. 풍경은 물리적 장면을 넘어서서,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의 감정과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재현되고 받아들여진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한국 현대미술, 특히 회화 장르에 있어서 풍경은 여전히 강력한 조형적 언어로 기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회화는 그리는 행위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무엇을 그렸는가, 왜 그렸는가로 해석과 감상의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형성하게 된다. 물론 이와 같은 질문이 너무나 단순해 보일 수 있겠지만 이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가장 명확하게 그 작가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회화는 단순한 질문으로부터 작가의 내면의 이야기를 끌어내거나 때로 그의 세계로 한없이 침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각예술의 장르이며 모든 현대미술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전히 시각예술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회화는 그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 중 풍경은 역사적 배경을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현대회화에 있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 왔던 사실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회화에 있어 강력하고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장우 작가는 이러한 풍경 회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감각적·감성적으로 재해석하여 오늘날 우리가 회화를 통해 풍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감응하며, 기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 풍경은 단지‘보이는 것’이 아니라‘느껴지는 것’이며,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기억된 것’이다. 그는 일반적인 사고를 배제한 채, 풍경이 전해주었던 기억, 그 순간의 감성, 그리고 캔버스 앞에 서 있는 현재의 감각이 서로 엮이도록 만든다. 이 복합적인 감각의 중첩은 단지 하나의 장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감성과 기억을 융합하고 소통할 수 있는 집합적 공간을 즉, 풍경을 그려내는 회화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현대 회화의 흐름 속에서 ‘정동(Affect)’이라는 개념과도 깊은 연관을 가진다. 정동은 감정이 언어화되기 이전의 감각적 떨림, 즉 어떤 장면이 말로 표현되기 전에 우리의 신체나 감각에 불러일으키는 미세한 반응을 의미한다. 이장우 작가의 풍경은 바로 이러한 정동을 통해 감상자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그의 작업은 단지 시각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의 무의식을 자극하며, 어딘가에서 봤을 것 같은 풍경 즉, 기억 속 풍경과 현재의 감정을 오버랩시킨다. 이는 풍경이 단지 자연의 모습이 아니라 시대의 정서적 풍경이자, 감정 이전의 감응이 머무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작가가 선택한 직접적인 경험의 풍경과 그 위에 덧붙여지는 작가의 감흥으로 재해석된 내면의 풍경이 겹쳐 지면서 현대 회화에 있어서 풍경의 표현 가능성이 확장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가의 표현기법 또한 이러한 정동적 접근을 뒷받침한다. 그는 유화라는 재료의 물성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화면 구성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화면 위에 두껍게 올라 간 유화 물감은 그 자체로 풍경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색덩어리를 형성한다. 이 색덩어리는 빛과 음영, 특정한 색과 질감의 조합을 통해 관람자에게 물리적인 두께 이상의 감각을 전달한다. 이는 전체 풍경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색덩어리들이 각각의 조형언어를 만들고 있으며, 이는 각각 부분적으로 봤을 때, 색과 행위로 구성된 일종의 추상회화를 상상하게 한다. 이것은 흡사 여러 추상회화들이 하나의 거대한 풍경회화를 구성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작가의 회화를 통해 현대회화의 역사적 흐름 상 추상회화와 표현주의적 개념과 기법의 발전이 어떠한 계기를 통해 진행될 수 있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물성이 단순한 재현의 도구가 아니라, 감정과 감각을 확장하는 조형적 매체로 기능한다. 화면 위에 두껍게 올려지는 물감의 층위는 그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시간의 흐름을 암시하고, 그 위에 드리워진 빛과 음영은 공간의 감응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장우의 회화는 감정의 표상이 아니라, 감정이 되기 전의 감각적 떨림, 즉 정동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그의 회화는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 소비에 지친 감각에 새로운 촉각적 감응을 일으키며, 물성에 대한 회귀와 동시에 현대적 감각을 공존시키는 지점을 만들고 있다. 이는 풍경회화가 단순한 전통적 장르가 아닌, 여전히 현재적 의미를 지니는 장르로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그의 회화는 풍경이 가진 시대성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제공한다. 즉, ‘가장 일상화된 풍경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게 일상을 담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풍경을 단지 자연의 배경으로 그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아닌,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과 기억이 축적된 그리고 축적될 장소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즉, 풍경은 과거와 현재, 기억 속 시간과 공간 그리고 현재의 경험으로서의 시간과 공간이 공존하는 접점이며, 그 속에 담긴 수많은 감성의 흔적들을 회화적 언어를 통해 다시 복원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여행은 그의 회화 작업에 있어 중요한 모티프이기도 하다. 그의 풍경은 단순한 장소의 기록이 아니라, 여행 중에 몸으로 기억된 감각의 흔적들이다. 여행은 그에게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시대의 감정과 기억을 추적하는 행위이며, 여행으로 채집한 풍경들은 그 여정 속에서 저장된 감성의 단편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장우 작가의 풍경은 ‘기억의 저장장치’이자 ‘감성의 발견틀’로 기능하며, 그에게 있어 회화는 감정을 기록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일종의 프리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즉, 작가에게 있어 회화는 앞서 언급했듯이 단순한 풍경 재현이 아닌, 감각의 굴절장치이자 일종의 감성의 분광장치인 셈이다. 따라서 이러한 프리즘적 회화를 통해 우리는 단일한 장면 속에서 작가의 다양한 기억의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현대 풍경회화가 개인의 주관적 감성의 소통을 통해 얼마나 깊고 다양하게 시대의 정서를 보여줄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현대 풍경회화의 의미를 역사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전통적인 풍경화가 자연에 대한 객관적 재현이었다면, 현대 풍경화는 점차 주관적 감성, 감각, 사회적 해석이 중심이 되어왔다. 19세기 인상주의가 빛과 감각의 문제로 자연을 접근했듯, 21세기의 풍경화는 개인의 감정과 기억의 범주에서 재구성된다. 특히 이장우의 작업은 감각의 다양한 범위 내에서 시대를 다시 읽고, 시대의 정동을 회화적으로 직접 이해하고 그 이해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회화의 지속가능성과 현대적 역할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이장우 작가의 풍경회화는 시대의 감성을 기록하고, 감정과 기억을 시각화하는 감각의 지형도이며, 풍경을 통해 시대와 인간, 감정과 예술을 연결하는 일종의 감성적 전이공간이다. 그의 작업은 풍경회화가 결코 과거의 장르가 아님을 증명하며, 그 안에 담긴 감성과 정동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흐름은 풍경화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대의 감각을 가장 섬세하게 포착하는 예술 언어로 충분하게 기능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